꽤 오래전의 이야기다. 한번쯤은 다시 읽어보려 했던 글이었는데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벌써 20년이 넘게 흘렀다. 겨우 회사에서 조직에 대한 이해와 구성원들에 대한 고민이 한참일 때 그리고 그때 막 엔지니어란 무엇인가하는 고민이 많았을 때 대한기계학회저널에서 "현장을 보며 생각하며"라는 제목으로 대우전자 유동수 상무라는 분이 월간으로 연재를 하고 있었다. 그 중 "새천년 조직의 리더를 위하여"라는 내용을 보고 느낀 바가 커서 주요 내용을 옮겨 적고 오래동안 그 뜻을 생각하며 지냈다. 이제 나도 그분의 나이를 훌쩍 넘었고 다시 그 내용을 곱씹어 보려고 한다.
... 실력 향상 이전에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개인의 자율과 창의를 막는 일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일이다.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면 사람은 갑갑하게 느낀다. 조직내 이탈자가 많은 부서는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쉴새 없이 세뇌하고 야단치는 상사 때문이다. 상사가 그 지시대로 되야 한다고 그 방안의 우수성을 역설하는 것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부하의 자율과 창의를 막음으로 인해 부하는 못 견딘다...따라서 윗사람은 그들이 작성한 추진 방안에 일부 문제가 있을 때, 그가 성숙한 사람으로 지적을 받아들이면 다행이나 그렇지 않다면 이를 다른 루트로 대비하거나 부작용이 작다면 그대로 승인하는 것이 좋을둣 싶다.
(대우전자 유동수 상무 “새천년 조직의 리더를 위하여중에서”)
시키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 부하직원(상사와 반대 개념)을 많이 보았다. 아니 어쩌면 시키지 않으면 일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가진 상사를 많이 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력이 아무리 많아도 지시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보았을때 느끼는 감정이 많았다. 그러나 반대로 수많은 억지와 시행착오를 유발하는 의견을 제시하고 우기는 부하직원도 많이 만났다. 난상토론을 해도 결코 물러남이 없이 자기의 주장을 하는 부하직원. 최소한 내가 보았을때 잘못된 정보와 생각 그리고 탐구하지 않고 주장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때로는 내가 가진 모든 권한(권력)으로 부하직원을 무력화시키려고도 했다. 그런 와중에 유동수 상무의 글을 읽게 된 기억이 있고 특히 "...이를 다른 루트로 대비하거나 부작용이 작다면 그대로 승인하는 것이 좋다"라는 조언이 마음에 와 닿았었다. 나 자신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회사일을 했는데 잘 못 될 가능성이 있다하여 일을 아예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 부하직원과의 일에 대해서의 갈등은 많이 줄었다.
제목이 "현장을 보며 생각하며"라는 연재글이라고 했다. 유동수 상무는 엔지니어로써 현장을 대하는 자세와 현장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나역시 이러한 영향으로 현장을 중요시하고 현장에서 답이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져왔다. 하지만 요새의 젊은 세대는 현장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좋은 지역(서울, 서울에서도 강남)에서 폼나게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이 보았다.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의 선배 엔지니어 세대들의 조언을 나의 후배 엔지니어 세대들에게 어떻게 전달해 줘야 할까?하는 고민을 해본다.
나는 작업자가 현장에서 문제를 가져오면 엔지니어의 최초의 반응이 “같이 가보자(Let's go see)"여야 한다는 것을 일찍 배운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어떤 문제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한 엔지니어는 상부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위해 도면이나 사양서들을 즉각적으로 참고하지는 말아야 한다. 엔지니어들과 작업자들이 만일 동일한 견지에서 그 문제를 보고자 한다면 그들과 함께 어려움의 현장으로 가야만 한다. 오직 그 곳만이 도면과 형식이 무시하는 현실세계의 복잡함을 평가할 수 있는 곳이다.
(인간을 생각하는 엔지니어링 page 69 중에서)
(추모(追慕)) : 대우전자 유동수 상무의 글을 찾고자 인터넷을 검색하다 그분이 2018년5월23일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재가 끝났을 때 메일로 글을 잘보았다고 보낸 기억이 있고 간단한 회신을 받은 기억이 있다. 한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돌아가셨다는 내용을 보니 참으로 인생무상을 느끼게 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23.1.30.
(c) 칠보 (chillbo)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MECE (미씨, 엠이씨이) (0) | 2023.02.28 |
---|---|
미션(Mission)과 비전(Vision) (0) | 2023.02.20 |
"이태원 참사"에 대한 또 하나의 감정적 견해 (0) | 2023.01.01 |
"세월호 침몰" 사고와 재해에 대한 감정적 견해 (2) | 2023.01.01 |
싹을 자르다 (0) | 2022.12.13 |
댓글